Opening Act:

19세기 영국 사교계에서는...

얼마 전 크리스 마틴과 기네스 펠트로의 딸, 애플 마틴이 사교계에 데뷔탕트를 하여 화제가 되었어요. 여전히 사교계 데뷔가 이루어지고 있는 영국을 보면 이질감이 듦과 동시에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말만 다를 뿐, 요즘은 인플루언서끼리의 친목이 사교계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유행을 선도하고 가십을 만들고... 패션,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까지 영향을 끼치고요! 

이처럼 영향력을 가지는 모임인 유럽의 사교계가 오늘날의 '사교계'와 다른 점은 신분과 가문 등 가지고 태어난 것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 사교계에서 발 넓은 것으로 유명했던 '마가렛 수잔'은 영국 도자기의 아버지라 불리는 웨지우드의 딸이었어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웨지우드 식기를 만드는 가문이었고요. 마가렛은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며느리와도 친분이 있었다는데요. 이름난 가문 출신의, 사교계를 주름잡던 마가렛은 이후 작곡가 본 윌리엄스를 낳습니다. 예상할 수 있듯, 본은 엄청난 지원을 받으며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의 음악은 마냥 고급스러운 것만을 좇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Main Act:

푸른 옷소매를 입은 그는 누구인가

Vaughan-Williams: Fantasia on Greensleeves

1872년, '가장 영국적인 작곡가' 레이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가 태어났습니다. 6살 때부터 전문적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그는, 왕립음악대학에서의 가르침 외에도 많은 유명 작곡가를 찾아다니며 작곡을 배웠어요. 우리가 잘 아는 막스 브루흐, 모리스 라벨을 사사하며 음악적인 시야를 넓혔죠. 특히 라벨은 윌리엄스에게 그만의 체계적인 관현악 기법을 전수했다고 해요.

이후, 윌리엄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고향이자 뿌리인 영국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가 직접 수집·정리한 800여 곡의 영국 민요, 찬송가, 뱃노래는 영국 고유의 선율이 잊히지 않도록 지탱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만들었죠. 이처럼 그는 바흐 합창곡을 영어 가사로 번안하거나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전통음악을 재해석하는 등, 시대적 전통과 개성을 동시에 잃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 작곡가였습니다💁🏻‍♀️

오늘의 곡 “푸른 옷소매 주제에 의한 환상곡(Fantasia on Greensleeves)”도 그중 하나입니다. 모두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이 곡은 영국 민요 “푸른 옷소매”를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곡이에요. 16세기경 푸른 옷소매의 옷을 입은 바람둥이 여인을 노래하는 민요가 유행했는데요. 많은 이에 의해 부르고 들린 이 음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수없이 많이 편곡되거나 변형되었고, 결국 윌리엄스에까지 닿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의 "푸른 옷소매"로 재탄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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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경험의 노래

Vaughan-Williams: Ten Blake Songs

앞서 계속해서 이야기한 영국적인 것.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본 윌리엄스 역시 이를 부단히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가장 영국적인 것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영시'를 골랐는데요. 셰익스피어의 시에 음악을 붙이는 등 대문호의 작품을 활용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 그의 눈에 들어왔던 또 다른 시인이 바로 윌리엄 블레이크입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는 어릴 적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철학적인 시와 강렬한 화풍으로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마치 '그림 시'처럼, 자신이 쓴 시를 그림 안에 배치하기도 했죠. 에디터 W는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에서 그의 대표작, <순수와 경험의 노래(Songs of Innocence and of Experience)> 원본을 본 적이 있는데요. 낱장 위에 그려진 여릿한 색연필 색감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였답니다. 작품에 완전히 매혹된 W는 결국 이 시화집을 구매했다죠💸

위에서 보면 본 윌리엄스가 대규모 곡에만 치중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가곡도 여러 개 작곡했고, 그 곡들도 관현악곡만큼이나 듣기 좋습니다. 블레이크의 시 10개에 착안하여 작곡한 "Ten Blake Songs” 역시 그러하지요. 신비로운 시의 내용을 담은 이 작품. 어때요, 진짜 영국이 느껴지는 것 같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