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ing Act:

2천 년 동안 다시 태어난 여자

연극 메디아

고대 아테네 비극 작가였던 에우리피데스의 손끝에서 탄생한 메데이아. 콜키스의 공주였던 그는 사랑 때문에 동생과 두 아이를 죽이는 악녀로 그려집니다. 이 극악무도한 여성 캐릭터는 2천 년에 걸쳐 여러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데요✍🏻 들라크루아가 그렸고, 케루비니와 샤르팡티에가 음악으로 썼죠. 

‘내 본성은 고통 속에서 자란 것뿐 나도 평범한 아녀자였다’

- 창극 "메디아" 중

메데이아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재해석 되었어요. 2013년 국립창극단의 창극 "메디아"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배우 이혜영이 메데이아 역을 맡아 연극으로 재해석 되기도 했죠🎭 특히 판소리는 극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장르 특성상 비극을 재해석한 경우가 많다고 해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토대로 하는 "리어", "트로이의 연인들"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처럼 근래에 들어 재해석 된 메데이아는 그를 '악녀'라는 프레임에 가두기보다는 복수가 꽃핀 원인과 그 사회상을 들여다보고자 했어요. 그렇다면 300년 전에 만들어진 오페라는 어떨까요? 오늘은 두 작곡가의 오페라를 통해 메데이아를 만나볼게요!👀

Main Act:

악녀인가, 권력의 희생양인가

Cherubini: Médée

신들의 여왕 헤라는 메데이아를 이용하여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을 돕기로 합니다. 헤라는 큐피드로 하여금 메데이아에게 사랑에 빠지는 화살을 쏘게 하고, 이아손을 사랑하게 만들죠🏹 그러니까 메데이아는 자신의 의지로 이아손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이용당한 것이에요. 첫 번째 살인이 신의 뜻이었다면, 두 번째 살인은 다른 여자와 재혼하려고 한 이아손에 대한 복수였습니다🥶 결국 메데이아의 살인은 여러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후에야 끝이 나게 되어요.

작곡가 루이지 케루비니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독일과 프랑스를 넘나들며 주로 활동했어요. 그래서 오페라 "메데" 역시 프랑스에서 초연된 이후 독일어 버전으로 재탄생하여 독일에서 공연되고, 이후 이탈리아 버전으로도 탄생했지요. 이렇게 여러 국가에서 소개된 덕에 케루비니의 "메데"는 브람스, 베토벤이 꼽은 클래식 중의 클래식으로 꼽힌답니다👍🏻 브람스는 "메데"를 서정 비극 중 제일로 꼽기도 했지요.

이렇게 여러 대가의 사랑을 받았으나, 이 작품 역시 수많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갔는데요. 20세기, 다시 케루비니와 메데이아의 존재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은 다름 아닌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였습니다. 칼라스의 연기는 복수에 눈먼 악녀이지만, 실은 권력의 방패이자 희생양인 메데이아의 두 모습을 잘 보여주어요🫢 연기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1960년대에는 칼라스를 주인공으로 동명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답니다. 칼라스는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더군요....!

💡하나 더! 케루비니가 작곡한 "메데"의 장르는 오페라 코미크로, 단어들만 두고 보면 비극과 굉장히 어울리지 않지만, 오페라 코미크는 사실 ‘대사가 있는 프랑스어 오페라’를 이르는 말이랍니다. 

More...:

태양을 위한 오페라

Charpentier: médée

케루비니에 앞서 메데이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샤르팡티에의 작품인데요. 1693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파리의 왕립음악원을 위해 작곡한 유일한 오페라로, 루이 14세가 굉장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오로지 루이 14세의 발레 사랑을 충족시키기 위해 작곡되었어요👑 작품 맨 앞의 프롤로그는 메데이아 이야기와 전혀 관련 없이 루이 14세를 찬양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왕 스스로는 물론, 동생과 아들들을 이 오페라에 출연시키기도 했죠. 이를 통해 국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절대왕정 시대의 예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코르네유의 프랑스어 대본을 바탕으로 하는 샤르팡티에의 메데이아는 초연 당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당시 파리의 오페라계가 급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듬해까지 극장에서 공연이 된 이 작품이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을 알 수 있죠.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로 분류되는 샤르팡티에의 오페라는 대사가 짧고, 분절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메데이아의 분노가 절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후에 작곡된 케루비니의 메데이아와 차이가 있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버전의 메데이아가 더 마음에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