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도서관을 지은 여자

#안나 아말리아 #Erwin und Elmire: Overture

2023. 9. 22.

🚪 거대한 도서관을 지은 여자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Duchess Anna Amalia Library) ©X

오늘 연주 한번에 듣기

Opening Act

*매주 에디터들이 꼽은 주목할만한 앨범을 소개합니다.

아르보 패르트: '거울 속의 거울' 3가지 악기버전 (Arvo Part: Verspiegelungen)

여러분은 집중할 때 음악을 듣는 편인가요? 에디터는 외부 소음이 너무 크지 않은 한, 음악 없이 조용한 것을 더 선호하는데요. 그럼에도 가끔 음악을 틀 때가 있어요. 특히 집에서 카페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애용하는 장치가 바로 음악이죠🎧

오늘은 거대한 도서관을 지은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도서관은 그 어디보다도 정숙을 요하는 곳이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콩나물로 음악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어요. 언젠가 아말리아의 도서관에 가볼 날이 온다면 그곳에서 이 음악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글릿 뉴스레터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에스토니아 작곡가인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거울 속의 거울"로 오늘 뉴스레터 시작할게요!

Main Act

Anna Amalia von Braunschweig-Wolfenbüttel - Erwin und Elmire: Overture

👏🏻👏🏻 오늘의 메인 연주는 안나 아말리아의 "Erwin und Elmire: Overture"이었습니다!

특정 음악가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한 시대가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있어요. 바흐나 헨델하면 바로크 음악이 생각나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렇게 다른 고유명사를 연상시키는 음악가들을 우리는 보통 위대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길고 넓은 인류사에 굵직하게 자신의 이름과 또다른 고유명사를 새겼으니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바이마르 고전주의’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낸 안나 아말리아 역시 예술계에 길이 남을 인물입니다. 1739년에 태어난 안나 아말리아는 16살에 작센 바이마르의 공작부인이 되었는데요, 어린 나이에 두 아들의 엄마가 된 그는 19세의 나이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습니다. 이후 안나 아말리아는 약 17년동안 바이마르 공국을 다스렸어요👑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였던 문학과 음악을 번성시키기 위해 괴테나 실러같은 예술가들을 불러 바이마르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발전시켰죠.

특히, 책을 좋아했던 안나 아말리아는 자신의 집을 개조하여 3만 여권의 서적을 소장한, 유럽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도서관,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간을 거듭하며 여기에는 희귀한 고서적들까지 추가되어 100만 권이 넘는 서적이 보관되었는데요. 대표적으로는 루터 번역 성서 초판본(1534), 파우스트 완판본(1854), 하이든의 악보 등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2004년, 큰 화재로 인해 일부가 소실되어 지금은 과거 모습을 그대로 만나볼 수는 없다고 해요. 그러나 발빠르게 대처하여 책과 건물의 일부는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골드스미스에서 괴테로, 괴테에서 아말리아와 모차르트로;

안나 아말리아의 문학 사랑은 그의 음악 작품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Erwin und Elmire(에르빈과 엘미레)"는 괴테가 올리브 골드스미스의 "웨이크필드의 목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창작한 동명의 대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괴테와 안나의 인연은 조금 특별해요. 괴테를 높이 평가한 안나는 괴테에게 작위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세운 도서관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의 관장직을 맡겼거든요😮 괴테는 무려 38년간 이 도서관의 관장으로서 수많은 책을 수집하고 관리했답니다.

이둘의 인연은 이쯤하고, 오페라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아름다운 로맨틱 코미디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엘미레는 시인 에르빈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시대 분위기상 엘미레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에르빈에게 뜻하지 않게 상처를 준다. 계속 엇갈리던 이들은 극의 말미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오늘은 2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중, 따로 자주 연주되는 서곡을 가지고 왔어요. 오페라의 서곡은 극의 요약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긴 오페라를 감상하기 어렵다면 서곡으로 살짝 맛보는 것을 추천해요.

💡 하나 더! 괴테의 "에르빈과 엘미레"에 곡을 붙인 작곡가는 안나 아말리아 뿐만이 아닙니다. 모차르트 또한 이 이야기로 곡을 썼어요. 바로 "제비꽃(Das Veilchen)"이 그 주인공입니다. 상큼한 멜로디로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이 곡, 에디터 W가 아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한데요. 엘미레에게 상처를 받은 에르빈이 자신을 제비꽃에 빗대어 부르는 곡입니다. 비록 보이 소프라노는 아니지만, 에디터의 추천은 바로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의 음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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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nrich Schütz: Symphoniae Sacrae I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여성의 음악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었어요. 19세기에도 보통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교육은 아주 소극적으로 이루어졌죠. 그러나 글릿 뉴스레터에서도 자주 소개하는 여성 음악가들, 예컨대 난넬 모차르트, 클라라 비크, 파니 멘델스존 모두 어릴 때부터 남동생, 혹은 남편 못지않게 음악과 밀접한 인연을 맺으며 성장해 왔어요. 같은 시대를 사는 여인들의 모습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렇듯 계몽주의 시대는 이전 시기에 비하여 여성에게 성공과 약속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이다. ...

그러나 음악의 생산을 크게 창조와 재창조의 개념으로 나눈다면,

이들 영역 중에 여성들은 재창조의 분야에서 주로 활동한 셈이다. ...

음악가로서 구분 없이 모든 분야에서 다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여성들에게는 암암리에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 음악사 서술의 미시(微時)적 접근, 신혜승

논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성은 주로 작곡과 작사 같은 창작의 부분보다는 연주와 후원 분야에서 활동했어요. 게다가 작품을 남긴다고 한들 출판되지 않다 보니 몇몇 여성 음악가들의 자료 이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죠. 높은 계급 여성이 음악 교육을 받는 목적은 바로 가문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럽의 귀족 가문은 예술 후원을 통해 예술적 취향을 대외적으로 알리곤 했어요. 문화를 후원함으로써 메세나를 실현하고자 한 것도 있고요! 여성들은 누군가의 부인이나 딸로서 문화를 후원했습니다. 이들은 다른 지역의 가문과 결혼하며 자신의 후원 범위를 넓혔고, 음악 문화를 전파했어요👰🏻‍♀️

대표적인 예가 헤센-카셀 가문의 공주 엘리자베트였습니다. 하인리히 쉬츠를 발굴하여 후원한 것으로 알려진 엘리자베트는 평소 영국의 류트 음악을 즐겼는데요. 자신의 음악 취향을 시가인 메클렌부르크-귀스트로 궁정으로 전파하여 이곳에서 영국 음악을 활성화하기도 했답니다!